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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한국 관계

한일튜브 2023. 10. 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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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조선의 관계 ( 러시아어 : Російсько-корейские отношения )는 러시아 ( 소련을 포함 )와 조선 ( 이씨 조선 , 일본 통치 시대의 조선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 대한민국 포함 )의 관계를 말한다.

개요

러시아와 조선의 관계는 이씨 조선이 청의 명령으로 러시아와의 싸움에 참여하게 된 것으로 시작된다. 조선에서는 이를 나선 정벌 이라고 한다.

나선정벌 ( 청나라와 러시아분쟁 )

당시 1654년과 1658년 사이 조선 또한 이 분쟁에 휘말려 참전했다. 1654년 3월 20일 ( 음력 2월 2일 )에 청나라에 다녀온 차사 한거원 ( 韓巨源 )이 서울에 돌아와 “ 조창 ( 鳥槍 )을 잘 쓰는 사람 1백여 명을 뽑아 보내라 ”는 청나라 예부의 요구를 전달했다. 이에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효종이 ‘나선 ( 러시아 )’이 어떤 나라냐고 묻자 한거원은 “영고탑 근처에 사는 별종들”이라고 대답했다. 한거원이 물러나자 영의정 정태화가 북우후 ( 北虞候 ) 변급을 군사 인솔자로 추천했다.

19세기 가 되면 국경을 넘어 조선인이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하고 이를 고려인 ( Коро сарам )이라고 칭하게 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는 조선은 일본 , 청, 러시아의 세력 싸움의 장이 되었다. 한때 조선에서 친로파가 권력을 잡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거주한다 ( 아관 파천 )이라는 이상 사태가 벌어졌다.

아관파천 ( 俄館播遷 )

아관파천 ( 俄館播遷 )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 9일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어가를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파천한 사건이다. 러시아에서는 이 사건을 고종 러시아공관 망명 (러시아어: Бегство Коджона в русскую миссию)사건이라고 불렀다.

이후 러일전쟁의 결과 조선은 일본이 병합했다. 일본 통치 시대의 조선에서 벗어나 소련으로 도망친 조선독립운동의 무장세력 ( 의병 )이 '일쿠츠크파', '상해파' 등으로 분열해 주도권 다툼을 일으킨 뒤 무장 해제를 요구 한다. 소련의 적군과 대립해 괴멸당했다. 이것을 자유시 참변 이라고 한다. 또 1930년대에는 요시프 스탈린의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로 강제이주됐다.

항일 파르티잔 김일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조선의 북반을 점령하고 항일 파르티잔 ( 빨갱이 )의 김일성을 보내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국, 더욱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이후 조선노동당 내부의 권력 싸움인 8월 종파사건에서 소련파는 숙청됐다. 소련과 대한민국은 대립관계가 이어졌지만 1990년 국교를 수립했다. 한편, 냉전 중에는 소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원조하고 있었지만, 90년대부터 KGB에 의한 북한 쿠데타 음모 사건 등으로 거의 정체해, 새롭게 성립한 러시아 연방은 북한 보다 소련 시대에 관계 정상 화한 한국을 중시하게 되었다.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부터 유엔에서 북한으로의 경제제재에도 자주 찬성하며 북한에서 중국과 함께 '미국을 추종했다' 는 등으로 비판되고 있다. 1996년 갱신되지 않은 서조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 러시아어; Договор о дружб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и взаимной помощи между Союзом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и Корейской Народ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ой Республикой, )대신 2000년에 로아사우호선 인근협력조약을 맺고 나서 남북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도 군사동맹의 조항은 삭제됐다. 한국군은 T-80 공여 등 경제차관 반환으로 러시아 군사 협력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러시아 협력으로 로켓 나로호를 쏘아 올려 두 번 실패한 뒤 세 번째 성공했다.